바야흐로 ‘가치 소비시대’다. 사람들은 이제 취향을 산다. 자신이 가치를 부여하거나 만족도가 높은 소비재를 과감히 소비한다. IT 주변기기에 디자인 감수성을 입히고 개성 있는 기업정신으로 승부하는 ㈜나인브릿지 김수종 대표. 9명의 리더가 모여 9개의 브랜드를 운영한다는 모토 아래 작지만 단단한 기업을 꿈꾸는 그의 유토피아를 엿봤다.
강력한 디테일의 힘, 남심 저격
창업은 무엇인가를 시작하는 일이고, ‘처음’이라는 단어에는 당연히 ‘시행착오, 예상치 못한 난관’이라는 꼬리표가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대체로 그것을 방어하거나 타계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쏟는 창업자들은 경영의 반열에 오른 중견 CEO들과는 다른 양상을 보일 수밖에 없다. 때로는 좌충우돌하는 망아지 같기도, 가끔은 고군분투하는 갓 잡힌 활어 같기도 하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나인브릿지의 김수종 대표는 여느 창업자와 비교해 좀 다르다. 김 대표는 창업 첫해부터 매출을 일으켜 불과 3년 만에 30억 원(2015년 기준)이라는 매출성과를 올렸다. 소위 잭팟을 터뜨리는 첨단분야도 아니요, OEM 물량 떼기도 아니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정통 제조업을 비틀고 재창조했으며, 오롯이 자사 브랜드를 브랜딩시켜 올린 성과다. 김 대표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이 같은 결과가 ‘우연’이나 ‘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왜?
2016년 4월 현재 국내 스마트폰 가입자 수는 4,400만 명으로, 국민 10명 중 8명이 스마트폰을 갖고 있다. 나인브릿지는 급성장하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스마트폰 액세서리와 주변기기를 생산하는 업계 대표주자다. 매출액 기준이 아닌 시장의 트렌드를 선도한다는 관점에서 대표주자란 표현이 과하지 않다.
메인 아이템은 프리미엄 차량용 스마트폰 거치대. 대쉬크랩은 뛰어난 호환성과 개성 있고 유려한 디자인으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쉽고, 어느 곳에나 장착·분리할 수 있는 기능 외에 작품으로 승화시킨 디테일이 나인브릿지 제품의 힘이 되었다.
대쉬크랩 FX는 천연고무를 사용한 젤 타입 흡착판을 이용해 원하는 곳 어디서든 안전하고 강력하게 거치할 수 있다. 게다가 물로 씻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흡착력이 약한 기존 거치대의 단점을 극복했다. 한편 작년에 출시된 대쉬크랩 모노는 전 과정이 수작업으로 생산되는 그립형 거치대로, 다른 대쉬크랩의 시리즈보다 클래식하고 한결 쉽다. 무엇보다 오리지널 소가죽과 고급스런 크롬을 장착해 남심을 저격하는 묵직하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이 차별점이다. 타사 대비 두 배 더 강력한 그립력, 최대 93㎜ 확장해 6인치 디스플레이까지 거치 가능한 확장성, 360도의 다재다능한 조인트도 이 제품만의 강점이다.
최근엔 차량용 방향제도 출시했다. 금형공법 중 가장 어려운 단계에 속하는 다이캐스팅을 활용한 덕분에 매달 수도, 끼울 수도, 고정시킬 수도 있다. 무엇보다 재료 자체가 주는 감성, 장인의 기술을 활용한 부품과 같은 차량과의 완벽한 일체감은 작품을 보듯 경이롭기까지 하다. 방향제 하나도 차별화하고 정성을 담고자 한 김 대표의 생각이 역력히 드러나는 지점이다.
기필코 창업, 사업은 DNA
이런 디테일에 힘입어 나인브릿지의 제품들은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전 세계 21개국에 40여만 개 수출됐으며, 대쉬크랩은 2016년 6월 기준 누적판매량만 120만 개를 돌파했다.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도 수상했고, 굿디자인도 수상했다. 미국 아마존, 일본 라쿠텐 자동차용품 베스트셀러에 12주 동안 연속 1위를 기록한 바도 있다. 국내 오픈마켓에서 카테고리 베스트를 차지하며 인기리에 판매되며, 국내외 특허와 상표, 디자인 등록만 25여 개에 이른다.
사실 스마트폰 액세서리와 주변기기 시장은 대표적인 레드오션이다. 그런 시장에 도전장을 낸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중소기업 사장이 개발한 차량용 스마트폰 거치대를 보고 ‘기능은 좋은데 좀 더 소비자를 매료시키게 할 방법은 없을까’ 하는 아쉬움이 발단이 됐다. 경쟁이 심한 창업 아이템을 선정해도 디자인, 서비스, 기능 중 한 가지만 정확하고 확실하게 파고들 수 있다면 성공 확률이 충분히 있다는 게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30대 초반부터 사업, 자영업에 대한 열망과 의지가 있었습니다. 창업을 진지하게 생각한 후부터 기획과 기술 중 무엇을 택할 것인가 고민했어요. 제가 잘할 수 있는 것은 브랜드를 키울 수 있는 능력이라고 판단하고 거기에 집중했죠. 테크놀로지는 아웃소싱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직장생활에 최선을 다하되, 주말이나 잠을 줄인 틈을 활용해 2년 정도 준비해서 창업을 했다. 창업 후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미 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그는 자신이 흔들리면 가정이 흔들린다는 생각으로 철저히 준비하고 최대한 작게 시작했다.
김 대표는 기업 경영에 있어서 ‘감사할 줄 아는 생활’이 자신을 지탱해주는 토대라고 말한다. 창업을 하면 끊임없는 유혹에 흔들리게 마련인데,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를 알면 이런 유혹에서 다소 자유로울 수 있다고.
“2014년에 회사를 25억 원에 사겠다는 사람이 있었어요. 저도 사람인지라 강남에 작은 건물이나 살까 하고 흔들린 적이 있어요. 하지만 저를 믿고 비전을 함께하기로 한 직원들과 협력업체에겐 한순간 나쁜 놈이 되겠죠? 대박보다 원칙과 소신을 지키면서 한 발짝 가다보면 뜻하지 않은 기회가 옵니다.”
사람은 사업의 핵심 요소다. 작은 회사의 직원 한 명이 가진 파워와 귀중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그러다보니 연애를 하듯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 중 지향점과 생각이 맞는 사람을 하나씩 영입해 지금은 설계, 디자인, 기획, 영업, 생산까지 총 6명이 한 가족이다. 계산하지 않고 하루 2~3명씩 많은 사람을 만났고, 오랫동안 구축된 인맥들은 자산이 되었다.
“저는 직원들에게 실패할 수도 있다고 솔직히 말해요. 회사는 언제든 망할 수 있지만 3개월, 6개월 전에는 꼭 말해주겠다고, 실패해도 피해 주진 않겠다고 얘기하죠. 저 자신도 실패는 할지언정 빚진 사람이 되지 말자고 주문해요. 그러기 위해선 내실 있게 가야 하고, 직원들이 동력을 가질 수 있게 적절한 대우를 해야 하죠. 연말에 수익의 30~35%를 상여금으로 배분하고 10~15%를 R&D에 투자하는 것도 이 때문이에요.”
브랜딩은 정성이다
인적·물적 투자를 통해 그가 구축하는 좋은 제품의 정의가 궁금했다. 그는 정의하기를 ‘정성스러운 제품’이라고 했다. 대단한 수식어 대신 나온 단어. 정성을 다하고 스스로 만족하는 제품을 만들면 회사는 자연히 성장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그래서 나인브릿지의 브랜딩도 ‘정성’에서 출발한다.
“저는 데이터적이지 않아요. 의사결정을 할 때 직관과 감성이 더 크게 작용하죠. 평소에 질문을 많이 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답을 찾죠.”
올해 매출도 추세대로라면 목표인 40억 원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동종 업계에 비해 1인당 매출비용과 생산성, 수익률도 높은 편이다. 이것이 모두 가능했던 것은 디자인을 중심에 둔 브랜딩이 시장에 먹혔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제품을 개발할 때 디자인이 흔들리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고, 디자인이 빛날 수 있는 개발 원칙을 고수한다. 디자인에 기본이 있되 비전이 있는 회사, 향후 소량 다품종 시대, 가치 소비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전략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큰 회사를 꿈꾸지 않는다고 했다. 오랫동안 그가 생각하는 완벽한 숫자 9명(국내외 영업, 마케팅, 재무, 총무, 설계, 기획을 담당하는 구성원 수)의 사람이 9개의 브랜드를 구축해 론칭할 수 있다면, 마침내 사내 벤처로 독립시킬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한사코 ‘내가 빛나지 않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그는, 사명처럼 기술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견고한 다리가 되고 있다.
김수종 대표의 좌충우돌 창업 분투기
기필코 브랜딩하라
조급하지 않게 경영하기 위해서는 작더라도 자기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처음부터 자기 브랜드로 브랜딩했고, 이름을 구축하는데 올인했다. 빨리 클 수 있는 OEM 유혹을 거부하고 디자인과 정성을 다한 제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대박을 터뜨리기보다는 지속적인 R&D만이 기업을 견고히 만들 수 있다.
작고 소박하게!
작게 창업하라. 창업을 하면 남을 의식하게 되고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보여주는 식으로 흐를 수 있는데, 거기엔 관리비용, 리스크 비용이라는 함정이 숨어 있다. 사업은 농사꾼처럼 방향을 정하면 손상이 가지 않게 꾸준히 가는 마라톤이다.
사업, 숫자가 아닌 가치로 보자
처음부터 돈만 바라보면 안 된다. 대박, 성공에 초점을 맞추면 핵심을 놓칠 수 있다. 창업자들이 창업을 하는 진짜 이유는 자신을 세상에 증명받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 돈을 벌어도 사장 개인보다는 근무환경에 투자(그래서 안양 IT밸리에 사무실을 매수했다)하고, 국내 생산을 고집하며 사회적·도덕적인 책임을 지려고 노력했다.
글 최윤경 객원기자 사진 박명래 객원사진기자